<뚝방전설>을 연출한 조범구 감독의 장편독립영화 <양아치어조>부터 최근 해외 영화제에서 잇따른 호평을 얻고 있는 <내 청춘에 고함> 그리고 개봉을 앞둔 HD 장편독립영화 <팔월의 일요일들>의 주인공 양은용을 만났다.
“돈은 안 되지만 대신 좋은 작품, 좋은 사람들을 만난 것이 좋아요.” 양은용을 만나 건네 들은 이 말은 배우 양은용과 자연인 양은용을 설명하는 적절한 이야기로 들렸다. 부탁 받은 일을 잘 거절하지 못하는 맘 약한 사람. 한편 배우로서 욕심나는 배역을 만나면 어떻게든 해내고 마는 근성 있는 배우. 설령 그 길이 턱없이 낮은 게런티와 관객과의 만남이 현실적으로 열악한 독립영화라도 말이다.
양은용은 근래 영화계에서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바쁜 배우다. <뚝방전설>을 연출한 조범구 감독의 장편독립영화 <양아치어조>부터 최근 해외 영화제에서 잇따른 호평을 얻고 있는 <내 청춘에 고함> 그리고 개봉을 앞둔 HD 장편독립영화 <팔월의 일요일들>까지 연달아 개봉을 맞았기 때문이다. “미 개봉작까지 장편 독립영화만 네 작품을 했어요. 그 중 세 작품이 개봉을 하게 된 거죠. 솔직히 개봉까지 할 줄 몰랐어요”라고 말하는 그의 눈이 반짝인다. 그런데 그의 이야기에서 한 가지 의구심이 일었다. 개봉이 뜻밖이라는 반응은 그가 개봉을 안 하게 될지도 모를 영화에 선뜻 출연했다는 이야기 아닌가. “사실 그냥 연기하고 싶은 배역을 만난 것만으로도 행복해요. <양아치어조>도 캐스팅 이야기를 듣고 거절하러 나갔다가 배역에 욕심이 생긴 경우에요. 그 전엔 독립영화에 대해 아무런 생각도 없었죠.”
사실 양은용을 독립영화계로 이끈 <양아치어조>는 한 번의 고사 끝에 그에게 되돌아온 ‘운명’같은 작품이다. 스타 배우도, 스타 감독도 없는, 게다가 돈도 안되는 저예산 독립영화독립영화에 출연하는 것을 반대한 소속사 때문에 양은용은 <양아치어조>의 현진 역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. 그러나 다른 배우에게 갔던 역할은 “한번만 더 회사를 설득해 달라”는 제작진의 제의로 다시 양은용에게 건네졌다. “이건 하늘의 인연이다 해서 고집을 부렸고, 결국 차라리 혼자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회사를 나오게 됐어요.” 양은용과 독립영화의 인연은 그 고집에서 시작됐다.
양은용은 1997년 SBS 공채 탤런트로 선발 된 뒤 그간 드라마 <비단꽃향무>와 <드라마시티> 같은 단막극으로 얼굴을 알렸다. 배우 데뷔한 지 벌써 10년이다. 변혁 감독의 <인터뷰>에서 본인의 이름을 딴 역을 통해 데뷔한 양은용은 이후 김대중 납치 사건을 다룬 사카모토 준지 감독의 <KT>, 엉뚱한 여비서 역으로 등장한 <공공의 적> 등의 상업영화에도 출연했다. 양은용은 “<인터뷰> 같은 경우는 제 이름과 성격을 그대로 따서 세미 다큐멘터리식으로 찍은 영화라 기억에 남는 작품이에요. <KT>도 사카모토 감독과의 작업을 통해 많은 걸 배웠고, 물론 <양아치어조>는 너무 사랑하는 영화고요. 매번 배운다는 생각이 강해요”라며 자식 자랑 늘어놓듯 작품 이야기에 열을 올린다.
모든 작업의 “과정을 중요시 한다”는 양은용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은 영화를 찍는 당시이고 절망한 순간은 영화가 완성되고 난 후다. “찍으며 배우는 건 기쁘지만 막상 끝나고 난 후엔 연기의 허점이 많이 보이기”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. 그 겸손은 기실 저 멀리 있는 커다란 욕심에서 기인하는 듯 했다. 현재의 자신을 커다란 목표치에 접근시키기 위한 끊임없는 담금질이라고나 할까. 최근 양은용은 10년 만에 연극 무대를 기웃거리기 시작했다. 이미 조연출로 한 작품을 올렸고, 다음은 무대에 직접 오를 계획이다. 연극 이야기에 다시 그의 까만 눈이 반짝거린다. “더 늦으면 안 될 것 같아서”라는 다짐과 연극 무대에 대한 동경이 교차하는 설렘이 고스란히 전해진다. 더불어 대학시절부터 꿈꿨던 단편영화 연출을 위해 써둔 시나리오 이야기와 나이와 연륜이 쌓인 후 연극 연출을 꼭 해보고 싶다는 계획을 꺼내놓는 품새가 조심스럽다. “단편영화 연출은 빠른 시간 내에 하고 싶어요. 배우들과 호흡하는 연극 연출은 좀 더 먼 훗날의 이야기가 되겠죠.”
하고 싶은 일을 차근차근 시작하는 지금이 행복하지 않냐고 넌지시 물어 보았다. 또 다시 겸손하지만 야무진 대답이 돌아왔다. “예술을 하고 싶은데 발치에 못 미치는 게 힘들죠. 경제적으로도 그렇고. 늘 그렇듯 행복과 고통은 함께 가는 것 같아요.” 연기 생활 10년, 또 다시 독립영화를 통해 자신의 연기를 발산하고 있는 배우의 저력 때문일까. 행복과 고통이 함께 하는 그의 걸음걸이가 꽤 묵직하고 믿음직해 보인다.
사진ㅣ이휘영
조형주